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십자군 원정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 했다. 괜히 우방인 다마스커스는 적으로 돌리고 인력과 물자만 낭비했다. [[다마스쿠스]]는 전투 직후 시점에는 어느 쪽에도 점령되지 않은 독립 상태를 유지했으나, 2차 십자군의 공격으로 이미 반(反) 십자군 정서가 팽배하게 되어 영주인 무인 앗 딘 우누르가 죽은 뒤 별다른 저항 없이 [[장기 왕조]]에 포섭되었다. 이로써 장기 왕조가 시리아-자지라 전체의 패권을 쥐게 되었으며, 이는 장차 [[아이유브 왕조]]의 성립으로 십자군 세력이 파멸하는 단초가 된다. 거기에 엿을 제대로 먹은 루이 7세는 노르만 왕조들과 연합하여 동로마를 칠 십자군을 결성하자고 난리를 치는 통에 십자군의 지원 세력이 되어야 할 동로마만 혼란스러워져 기독교도들 간의 분열이 가속됐고 [[십자군 국가]]들의 안보 공백은 더욱 심화되었다. 그나마 [[유럽]] [[그리스도교]] 세계가 거둔 성과라면, 십자군의 일파가 [[포르투갈]]에 중도하차하여 [[이슬람]] 세력이 지배하던 [[리스본]]을 함락시킨 것 정도가 있다. 사실, 이 '''[[리스본]] 함락이 [[이베리아 반도]]의 [[레콘키스타]]에 중요한 변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.''' 하지만 정작 원래 목표인 우트르메르는 제대로 엿만 먹었다.(...) [[분류:동로마 제국의 대외 전쟁]][[분류:동로마 제국의 종교 사건 사고]][[분류:마누일 1세]][[분류:신성 로마 제국]][[분류:십자군 전쟁]][[분류:프랑스의 역사]][[분류:프랑스-시리아 관계]][[분류:프랑스-레바논 관계]][[분류:독일-이스라엘 관계]][[분류:12세기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